독후감

[국내] 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단 연 2020. 4. 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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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아뿐을 읽고.

w. 단연

 

 

지구에서 한아뿐 '경민'의 대사

 

 

 

2주 아니면 4주 그리고 이번에는 새로 바뀐 약들에 잘 적응했는지 판단하기 위해 일주일만에 병원을 들리는 날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외출을 하는 것이 겁이 나긴 했지만, 가야만 하는 일이었다(마스크 필수 착용). 병원은 집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먼 병원이었다. 그 덕에 은근슬쩍 바깥 바람도 쐬고 올 수도 있다. 늘 그랬듯 귀에 이어폰을 꽂고 발걸음을 옮겼다. 늦게 병원에 도착하면 손님이 많아 기다림에 지칠까 아침 일찍 나가려고 했지만 평소에 늦잠 자던 버릇 때문에 오후가 되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손님이 많아도 기다려야지, 그렇게 생각한 채로 버스에 몸을 기대니 마음이 한층 편해졌다. 바꾼 약도 잘 맞는 것 같았다.

(마스크 착용, 손소독과 볼 일을 보고 바로 집에 가는 등 사회적 거리두기에 최선을 다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여기선 버스를 참 역동적이게 몬다. 기사님이 방지턱을 넘길 때마다 내 몸도 함께 붕 뜨곤한다. 그럼 곧이어 엉덩이가 의자랑 부딪힌다. 의자가 딱딱한 재질이 아닌 것에 감사하며 병원에 도착한다.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손님이 별로 없다. 그러면 앗싸, 속으로 쾌재를 부르다가도 병원의 실력 부재가 아닌 코로나라는 바이러스 때문이란걸 알기때문에 마음이 알싸하게 가라앉는다. 곧이어 내 이름을 부르고 나는 3개월 동안 마주했던 선생님 앞에 또 한번 앉는다. 이쯤되면 선생님한테 삼촌이라고 부를 수 도 있을 것만 같다. 앞으로 1년은 더 마주해야한다는 소리도 얼핏 들은 바가 있다.

 

익숙하게 1층에 자리한 약국에서 약을 타고 나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향기가 고팠다. 말이 안되는 소리지 않나. 향이 고프다니.

 

나는 휴대폰으로 길을 찾았다. '서점'과 병원의 거리. 걸어서 10분도 채 안되는 거리였다. 건강한 나였더라면 흔쾌히 마주했을 그 거리가 지금의 나에게는 벅찼다. 하지만 오래 걸으면 힘들어할 나를 알았음에도 서점을 갈 수 밖에 없었다. 인터넷으로 끙끙대며 도서 사이트를 찾아봤지만 불가항력이었다. 나는 책이, 고팠다.

 

내가 찾는 책은 2, 3층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1층을 맴돌았다. 마스크를 착용했음에도 그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는 코를 통해 들어와 마음까지 도달해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게 해주었다. 충분히 둘러본 뒤 2층 그리고 3층으로 향했다. 나는 사고 싶은 책 2권이 있었다.

 

한권은 지금 드라마에서 방영하고 있는 책이다. 바로 이도우 작가님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고,

나머지 한 권은 정세랑 작가님의 '지구에서 한아뿐' 이었다.

 

물론 다른 책들도 가지고 싶었지만 그 많은 경쟁률을 뚫고 내 투픽은 이 두권이었다. 그런데 '지구에서 한아뿐'을 고른 이유가 무엇이냐고?

 

 

 

'지구에서 한아뿐' 정면 책표지

 

 

 

 

'지구에서 한아뿐' 측면 책 표지

 

 

디자인 때문이었다. 딱딱한 각양장의 형태로 하늘색과 황토색의 조화 속에 한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다. 그 의자와 코트의 색도 배경의 색과 유사하다. 왜인지 쓸쓸해보이는 그 뒷모습은 손길이 안갈래야 안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내 마음을 결정적으로 사로잡은 귀여운 문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문구가 궁금한가? 이건 직접 펼쳐보는 걸 추천한다.

 

그래서 나는 책 내용이 궁금했다. 몇 십분째 고민하다 내 손은 서점에서도 딱 하나밖에 없었던 이 책을 골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탁월하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만든 세계에 기생할 수 밖에 없다.
끊임없이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세계에, 예수와 부처의 세계에,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세계에, 테슬라와 에디슨의 세계에, 애덤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세계에, 비틀스와 퀸의 세계에,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세계에 포함되고 포함되고 또 포함되어 처절히 벤다이어그램의 중심이 되어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이 특이했던 점은 목차가 딱 하나였다. 지구에서 한아뿐 그리고 작가의 말. 간단 명료했다. 왠지 복잡한 감정없이 무거운 마음을 툭툭 건드려 부숴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세계에 포함이 되어보았고 지금도 누군가의 세상을 열렬히 지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본문에 나오는 저 마음을 누구보다도 이해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기다리는 게 즐거울 수도 있구나. 이건 또 새로운데? 한아는 계단에 앉아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 기다림은 지루한 존재와도 같다. 시간은 금이며 계획이 틀어질 때 괜한 짜증이 나는 성격의 소유자다. 그래서 항상 약속 시간에도 일찍 나가고 만약 나를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을 속으로 안 좋게 생각하기도 하는데, 한아(책에 나오는 주인공)은 사랑을 시작하면서 기다림을 즐거움으로 바라보았다. 그저 부러웠다. 이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한아는 11월의 바다처럼 짙은 코발트색 실을 썼는데 그로써 드레스 하나에 새로운 것, 오래된 것, 빌린 것, 파란 것 모두가 들어간 셈이었다.

 

한아는 평소 친환경적인 삶을 중요시하며 그렇게 산다. 수선집을 하는데 일반 수선집이 아닌, 사람들이 입던 옷감을 가져오면 다른 방식으로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일을 한다. 바느질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내가 한아로부터 위대한 영감을 받은 듯 이리저리 바느질 해놓은 옷들이 내 방에 걸려있는 모습이 뇌리에 살짝 스쳐 지나갔다. 그랬다. 나는 또 다른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몇달 전만해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하루 중 6시간 빼고는 잠만 자던 아이가 무엇을 계속 만지고 만들고 싶어하는 기적이었다. 이 이야기는 기적을 닮아있다. 어떻게보면 유치한 동화같기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담고있다.

 

 

<몰랐던 단어들>

*교치성 : 조절력에 관한 인체 여러 기능의 통합적 능력.

*선험적 : 인식의 주관적 형식이 인간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그런 것.

*심상하다 : 대수롭지 않고 예사롭다.

*필담 : 음성언어가 아닌 문자언어로 대화를 주고 받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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