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노랑무늬영원』을 읽고: 기억과 감각의 파동
책을 읽다가 문득, 한 문장에서 숨을 멈춘 적이 있던가. 『노랑무늬영원』을 읽으며 나는 몇 번이고 페이지를 덮었다. 숨을 가다듬고 다시 펼쳤다. 한강 작가의 문장은 감정을 깊숙이 파고들어,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감각까지 깨우는 힘이 있었다.

📖 『노랑무늬영원』
어떤 책일까? 이 책은 한강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장과 철학적인 깊이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감정과 기억, 상실과 존재에 대한 탐구가 담긴 소설로, 문장 하나하나가 강렬하게 와닿는다
기억 속에 남은 장면

💡 “사람 몸을 태울 때 가장 늦게까지 타는 게 뭔지 알아? 심장이야. 저녁에 불을 붙인 몸이 밤새 타더라. 새벽에 그 자리에 가보니까, 심장만 남아서 지글지글 끓고 있었어.”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 강렬한 장면이 떠올랐다.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눈앞에서 심장이 지글지글 끓고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 한강 작가는 이렇게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는 데 정말 능숙하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픔

💡 “그때 당신이 나에게 물었습니다. 어디가, 아팠니? 나도 모르게 떨리는 손이 가슴으로 올라왔습니다. 가슴뼈 사이 오목한 곳, 어떤 장기도 없는, 그렇게 아파보기 전에는 그런 장소가 몸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곳이었습니다.”
마음이 아플 때, 신체적으로도 통증이 느껴진 적이 있는가?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그 감정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다가왔다. 아프다고 말할 수도 없을 만큼 깊은 감정. 그걸 글로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무력했던 순간

💡 “인간의 밑바닥을 향해, 무서운 속력으로 곤두박질쳤다. 가장 낮은 지점, 동물적인 지점까지 내려갔다고 기억한다. 치매 노인의 정신세계가 이런 것일까 짐작될 만큼, 종종 나는 먹고 배설하고 잠을 잘 뿐인, 그야말로 본능과 무의식으로만 남은 존재였다.”
한 번이라도 무력감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이 문장이 가슴을 후벼 팔 것이다. 문장은 담담한데, 읽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무너진다. 인간이란 존재가 이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기억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까

💡 “기억할 수 없는 시절은 정말 무의식 속에 들어가 있는걸까? 그렇다면 좋겠어. 그런 자연스러운 상태가 숨어 있다가, 가장 필요한 순간에 우릴 도와준다면.”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은 정말 사라진 걸까? 아니면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불쑥 우리를 도와주는 걸까?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완전히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따뜻했던 순간들이 어렴풋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한강의 문장을 만난다는 것
한강 작가의 글을 읽는다는 건, 단순한 독서가 아니다. 마치 감각을 깨우는 경험과 같다. 그녀는 마치 흰 페이지 위에 글이라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 같다.

📖 『노랑무늬영원』을 읽으며,
나는 또 한 번 그녀의 문체에 감탄했다.
이 책을 읽은 기억이 내 무의식 속 어딘가에 남아 언젠가 나를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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